[유로 스코프] 유럽서 식어가는 중국몽… 독일 74%, 스웨덴 83% “중국이 싫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대학 장 모네 석좌교수 

여름 성수기로 들어선 파리 중심가의 백화점에는 중국어가 들리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 유럽의 명품가와 고급 식당들은 중국 관광객들로 넘쳐 났다. 사업가들은 앞다투어 중국어를 배웠고, 중국에 지사를 개설했다. 중국과 관계된 세미나에는 주제를 불문하고 청중이 몰렸다. 그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중국에 대한 열기는 유럽에서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다.

중국은 유럽에 있어 거대한 시장이자 투자 파트너이다. 유럽연합(EU)은 1975년 중국과 수교 이후 다양한 형태의 정치적, 경제적 교류를 강화해 왔다. 특히 최대 교역국인 독일은 ‘무역을 통한 변화’라는 원칙하에 중국과 실용적인 관계 증진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일대일로 전략을 비롯한 중국의 정치, 경제적인 팽창은 유럽의 우려를 키우기 시작했다. 2019년 발표된 EU의 대(對)중국 전략 보고서는 중국을 유럽의 ‘체계적, 경제적 경쟁자’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도 중국은 ‘체계적 도전’으로 규정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의 전 세계적인 확산과 미·중 갈등 구도의 강화는 유럽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화시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중국 정상회담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유럽의 대(對)중국 인식은 작년과 올해 두 개의 결정타를 맞았다. EU가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의 인권문제를 지적하며 유엔 차원의 인권 결의안을 채택하자 중국은 유럽의회 의원, EU이사회 정치안보위원회, 그리고 유럽 기업인들을 대대적으로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는 사상 초유의 외교적 강공을 펼쳤다. 홍콩 민주주의 문제와 맞물리며 중국과 유럽 사이에는 인권 문제에 있어서 깊은 단층대가 형성되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중국이 러시아의 입장을 옹호하기 시작하면서 유럽과 중국은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


지난 4월 1일 개최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시진핑 주석 간의 정상회의에서 유럽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홍콩 인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한 반면, 중국은 EU가 미국으로부터 독립적인 입장에서 중국과 협력하며 글로벌 성장에 기여하라는 추상적 메시지로 응수했다. 접점을 상실한 양측의 논쟁은 ‘농아들의 대화’가 되었다. 대만 문제 역시 중국과 EU를 갈라 놓았다. 중국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유럽 정·재계 인사들은 대만을 방문했고,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서도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 공급망에 대한 유럽과 대만의 협력도 강조되어 왔다. 대만을 외교적으로 인정한 리투아니아에 대해 중국은 전면적인 제재와 관계 단절을 선언했지만, 오히려 유럽 내에서 그 후폭풍은 만만치 않다.





중국과 유럽의 가치관 충돌은 양자관계 악화의 주원인이다. 다극적 세계질서 하에서 주도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중국은 인권, 민주주의 등 유럽이 강조하는 가치규범으로부터의 제약에 반발하며 애국주의에 기반한 공격적인 ‘전랑(戰狼) 외교’를 펼쳐 왔다. 이는 또한 오는 가을로 예정된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위해 대외적 압력에 대한 갈등을 증폭시키며 대내적 결속을 모색하려는 시도와도 연결된다. ‘제로 코로나’ 정책하에서 인적교류 중단과 투자 부진 역시 중국에 대한 유럽의 기대 수준을 더욱 낮추고 있다. 유럽의 대(對)중국 무역수지 적자 폭이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중국 주도로 중·동부 및 남부 유럽을 아우르는 경제협력기구인 ‘16+1′ 체제도 와해되고 있다. 유럽에서의 ‘중국몽(夢)’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중국을 둘러싼 유럽과 한국의 고민은 유사성이 있다. 중국은 양측에 미국과 변별력을 가지는 보다 독립적 입장에서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추진할 것을 공통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유럽과 한국은 동맹국인 미국과의 협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동참하면서도, 시장으로서의 중국과 한반도 평화에 있어서의 중국의 필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선택의 상황은 끊임없는 딜레마를 던져주고, 양자 및 다자 차원에서의 해법을 위해 머리를 맞대게 한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매개로 유럽 및 아·태 4개국(한, 일, 호주, 뉴질랜드)과의 정치적, 경제적 공통분모도 커지고 있다.


대(對)유럽 외교의 강화는 한국이 중국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더욱 중요해졌다.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지지뿐만 아니라, 중국 관련 의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EU 및 유럽 주요국들과 정치, 경제적인 보조를 맞추며 불가피한 선택에 따른 비용을 낮춰야 한다. EU 특사단 방문 및 대통령의 NATO 정상회의 참석은 대(對)유럽 외교에 있어 전례 없이 유용한 기회가 되었지만, 그 모멘텀을 살리기 위해서는 보다 긴밀한 후속 조치들을 필요로 한다. 한국 외교의 가치, 원칙 및 동맹구조에 대한 재정비는 유럽과의 공조에서 참조할 여지가 많다. 특히 유럽의 외교적 어법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유럽은 국제규범, 법치, 인권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명확한 원칙을 견지하지만, 인도·태평양 전략을 비롯한 주요 지정학적 의제에 있어 중국을 명확히 지칭하지 않으면서 개입과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는 외교적 수사를 사용해 왔다. 오랜 역사적 균형감과 신중함은 여전히 유럽 외교의 덕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대(對)중국 외교는 새로운 형질 변경을 시작했다. 중국몽은 새로운 현실을 맞고 있다. 국제정치 주체들 간의 협력과 견제의 중심추가 이동하기 시작했고, 보이는 외교와 보이지 않는 외교를 병행해야 하는 난도는 더욱 높아졌다. 국제 질서의 큰 해류가 변하는 격랑의 시점에는 고민과 가치를 함께 하는 보다 견고한 선단에 속해 있는 것이 유리하다. 한국에 있어서 유럽을 포함한 범(凡)동맹외교가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