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미국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구축

[강문성의 경제 돋보기]


반도체에 이어 전기차 배터리로 번진 미·중 기술 패권 경쟁

미국은 IRA법으로 배터리 공급망 구축하고

중국은 배터리 공급망 확보와 가치 사슬 확대에 주력

미국 자동차 기업과 중국 배터리 기업의 디커플링은 글쎄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반도체에 이어 전기차(EV) 배터리와 관련 원자재 분야로도 확대되고 있다. EV는 친환경 교통망 구축, 산업 경쟁력 확보 등의 측면에서 미국에 중요한 산업이다. 특히 EV 배터리와 관련 원자재의 안전한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EV 배터리와 관련 원자재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발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이러한 미국 정부의 정책적 노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첨단 에너지 프로젝트 공제(AEPC)’와 ‘첨단 제조 생산 공제(AMPC)’를 통해 핵심 광물의 제조·제련·재활용 시설(세금 코드 48C)과 배터리 관련 전극 재료, 배터리 셀, 모듈, 핵심 광물 등의 생산(세금 코드 45X)에 세금 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소비자 세금 공제 역시 제공되는데 배터리 구성 요소의 50%(향후 10년 동안 꾸준히 증가)가 북미에서 제조 또는 조립됐으면 7500달러 공제의 절반(3750달러)을 사용할 수 있고 나머지 절반은 배터리 광물이 미국 또는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회원국에서 추출 재활용 또는 가공된 때에만 사용할 수 있다.


결국 이 법은 구성 요소 또는 중요 재료가 중국에서 공급되면 EV 세금 공제 적용을 금지한다. 또한 온쇼어링(미국 현지 생산)과 니어쇼어링(미국 인접 국가에서 생산) 조항은 미국과 북미 국가에 대한 투자 관심을 높이고 있다. IRA법이 제정된 지 3개월 만에 미국 EV 배터리 공급망에 대한 일련의 투자 약속은 총 135억 달러로 이전 3개월의 75억 달러에 비해 급격히 증가했다. 이에 더해 IRA는 향후 10년 동안 미국 배터리 산업에 9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지난 1월 31일 제너럴모터스(GM)는 미국 네바다 주의 태커 패스 대규모 리튬 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6억5000만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 자동차 제조 업체가 자국 배터리 공급망 구축을 모색함에 따라 미국의 자동차 산업과 관련 광업 간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투자가 대중국 배터리 의존도를 낮추는 데 효과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IRA가 그 취지에 맞게 성공적 이행 여부, 미국과 경쟁하는 유럽연합(EU)이 자체 EV 배터리 공급망에 제공할 지원 수준 등 현재 불확실한 여러 요인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중국 역시 그냥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와 업계는 EV 배터리 공급망 확보와 EV 가치 사슬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발표된 EV 배터리 부품 제조 능력 확장 계획은 대부분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최고의 리튬 배터리 제조 업체인 선와다는 장시성에서 탄산리튬 및 양극재 생산에 24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발표했고 중국에서 둘째로 큰 리튬 화학 생산 업체인 톈치리튬은 지난해 11월 호주에서 수산화리튬 프로젝트 아래 상업적 생산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또 중국 CATL이 유럽에서 건설 중인 배터리 프로젝트는 최소 8개다. 2031년까지 중국 기업은 유럽에서 322기가와트시의 생산 능력을 확보해 유럽 배터리 공급망을 장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반해 미국 기반 회사의 용량은 유럽에서 5위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중 경쟁으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직접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 의외로 쉽지 않다. 미국의 자동차 기업들은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등 배터리 제조 업체와의 협력 강화를 꾀하고 있지만 중국과의 협력은 이미 오랫동안 진행돼 완전한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산 EV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우수해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그동안 중국과의 생산 협력 시스템을 구축했다. 단적인 예로 테슬라는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CATL이 제작한 배터리를 탑재해 지난해 7만 대 이상을 생산 배송했다. 이 규모는 테슬라 전 세계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또한 중국은 지난해 전 세계 EV 판매량의 60%를 차지한 세계 최대 EV 시장이다. 미국 기업 역시 이러한 시장을 놓치기 싫은 눈치다. 결국 한국은 이러한 국제 통상 환경의 변화와 주요 국가별 전략을 분석해 첨단 분야 기술 발전, 산업 경쟁력 강화, 중·장기적 경제 성장에 초점을 두고 선제적인 산업 통상 정책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강문성 고려대 국제대학 학장 겸 국제대학원 원장


출처: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0/0000064119?sid=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