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⑤]김성한 "북핵동결·미북진전은 우리로선 중매 나섰다 뺨맞는 격"


“미북정상회담 공식화하지 않은 北, 상황보면서 톤 잡는 중... 상당히 노회해”
“군사 강국 미국, 외교적 디테일 떨어져… 부족한 디테일, 동맹인 한국이 챙겨야”
“외교부 패싱되도 한국 패싱 안된다면 다행이지만.. 경험 많은 외교 인력 적극 활용해야”

김성한 전 외교통상부 제2차관은 13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장실에서 진행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적당히 핵 동결하고, 미북관계가 진전되면, 정부로서는 중매에 나섰다가 되려 뺨맞는 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희훈 기자


북핵 해결을 위한 문재인정부의 ‘중매외교’가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을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12일 중국으로 떠났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방북 및 방미 결과를 설명한 정 실장은 이어 러시아를 방문한 뒤 14일 오후 귀환한다. 서훈 국정원장은 13일 아베 신조(安倍 晋三)일본 총리를 접견했다. 남북,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북핵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주변 4강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정부 내에선 미·북 외교 접촉을 시작으로 주변국으로 참여를 확대하는 로드맵이 거론되고 있다.

 


이와 관련, 김성한 전 외교통상부 제2차관은 13일 “외교 협상에서 보면 미국은 항상 디테일이 약하다. 북핵 해결 과정에서 미국의 부족한 디테일을 한국과 일본이라는 동맹국이 메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이날 고려대 국제대학원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절대로 정상회담 하나로 핵문제를 담판짓는 모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군사적 위협 제거와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조건은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상태로 두면서, 비핵화 조건은 구체화한 뒤 비핵화 자체는 상당히 길게 잡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차관은 “북한은 적당히 핵 동결하고, 미북관계가 진전되면, 정부로서는 중매에 나섰다가 되려 뺨 맞는 격이 될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야심 때문에 검증을 6개월내에 완료하겠다든지 무리하게 하면 지는 협상이 된다. 시나리오를 철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입장에서는 주한미군 존재를 인정해주면서 ‘핵 폐기’가 아닌 ‘핵 동결’ 정도로 때우고, 국제사회로부터는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받고 미국과 국교 정상화하는 미끼를 던질 수 있다. 북한이 ‘자신들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한다면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 정책에 협조할 수도 있다’는 제안까지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우리의 전략적 선택에 엄청난 장애요인이 된다”며 “낭만적 민족주의로 북핵문제를 바라봐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어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반드시 북핵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며 “핵문제를 거론하지 않으면 나중에 핵문제가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로 변환이 됐을 때 자칫하면 우리가 배제될 수 있다. 북핵이 북미간 문제인 동시에 남북간의 문제라는 점을 북한이 느끼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핵 동결에 대한 보상은 제재 완화로 해선 안된다. 경제적 자산보단 정치적 자산(Political Capital)을 써야 한다”며 “(국제사회의)대북제재 전열이 흐트러지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고 했다.


김 전 차관은 이와 함께 “핵심전략 결정 과정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지금부터는 상황이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많은 경험을 가진 외교부의 실무 인력들, 에이스들을 잘 활용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성한 전 외교통상부 제2차관. /윤희훈 기자


-최근의 상황을 어떻게 보나. 


“일단 지금까지 모든 상황이 특사단의 입을 통해 전달됐다. 북한의 책임있는 당국자나 최고지도자의 육성을 통해 공개된 내용이 없다는 게 걸린다. 특사단을 거치면서 정제된 간접 메시지에 세계가 반응하고 있다. 특사단이 김정은 대변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이게 좀 불안요소다. 북한이 나중에 다른 말을 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아직 대외 매체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미북정상회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내부 정리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반응이 미북정상회담을 한다는 소식이 막 나왔을 때와 2~3일이 지난 후가 다르지 않나. 처음에야 모두가 놀랐지만 며칠 지나니 신중론이 올라온다. 북한이 추이를 보면서 자신들이 어떤 톤(tone)을 낼지 감을 잡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런 노회한 모습을 보면 무섭단 생각도 든다.”


-백악관도 특사단 접견 직후와 비교하면 상당히 조심스런 모습이다. 


“백악관도 처음엔 (미북정상회담 제안이) 의외여서 놀랐을 것이다. 그런데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을 해보니 ‘이거 또 지뢰밭을 걷는 상황이 올 수 있겠구나, 잘못하면 지뢰를 밟아 발목이 날아갈 수도 있겠구나’고 판단한 것 같다.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벌써 시작됐다고 봐야한다. 협상을 위한 줄다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보통 협상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협상시 시작됐다고 생각하지만, 협상 환경을 자국에 유리하게 조성하려는 노력은 이에 앞서 시작된다.”


- 일단 북한이 던진 수가 통했다고 봐야 할까.


“그렇다. 북한이 회심의 카드를 던졌다. 북한은 지금까지 크게 2~3차례 국제사회를 속였다. 1994년 제네바합의, 2007년 2·13합의, 그리고 2012년 2·29합의를 들 수 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신뢰도가 크게 추락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국제사회 주의를 끌고 기대수준도 올리면서 나름 신뢰도를 상승시킬 수 있는 카드로 미북 정상회담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북한은 이번 카드를 트럼프 대통령이 덥석 물 것이라고 계산했을 것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실제로 만날 것이라 보나.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려고 애를 많이 쓸 것이라 생각한다. (회담 추진과정에 난관이 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만남을 위해 상당히 노력을 할 것이라는 뜻)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만남을 원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향후 미북 대화가 어떻게 전개될까.


“북한의 이러한 전술이 어떻게 끝날지는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힘들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압박을 피하기 위한 전술적으로 움직이면서 핵보유국 지위를 얻는 전략적 성과를 거두고 싶을 것이다. 미북 양측 모두 협상의 귀재, 당대 전략가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과 미국의 전통적인 전문 관료들의 전문성이 잘 합쳐진다면 의외로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다.”


김성한 전 외교통상부 제2차관. /윤희훈 기자


- 결국 북한의 대화 목적은 ‘핵보유국 인정’으로 봐야 하나.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북한은 미북대화에서 ‘미국과 잘 지내고 싶다’면서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하려 할 것이다. 특히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 달라’면서 ‘자신들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한다면 미국의 대 중국 견제 정책에 협조할 수도 있다’고 할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을 이용해 핵보유국 지위를 노린다는 말인가.


“실제 유사한 에피소드가 있다. 2007년 12월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미국 전미외교정책협의회(NCAFP)의 초청으로 뉴욕을 방문한 적이 있다. 김계관은 당시 NCAFP가 주최한 저녁 리셉션에 참석했다. 이때 헨리 키신저 장관과 김계관이 칵테일잔을 들고 둘이서만 대화한 순간이 있었다. 도날드 자고리아(Donald Zagoria) 수석 부회장이 당시 그들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나에게 전해줬다. 당시 김계관은 키신저에게 ‘왜 미국은 북한의 전략적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미국과 잘 지내고 싶다. 미국 입장에선 우리 공화국을 잘 활용하면 중국을 견제하는데 유리할 것이다’고 했다고 한다. 키신저 장관도 후에 사석에서 김계관의 발언을 언급했다. 내가 키신저 장관에게 ‘그때 김계관에게 뭐라고 답했냐’고 묻자, 키신저는 ‘좋은 지적이지만, 너희는 너희 공화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고 했다.


-북한이 겉으론 혈맹이라면서 속으론 중국을 싫어한다는 얘기인가.


“북한은 중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김정은은 확실하지 않지만, 김정일 때까지만 해도 북한이 주변 4강 중 가장 싫어하는 나라가 일본, 다음이 중국, 세번째는 러시아, 네번째가 미국이었다. 북한은 그동안 할 수 없이 중국에 기대왔다. 하지만 최근 북중관계가 냉랭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군사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앞으로 자신들의 상황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판단해 예방적 차원에서 다양한 전략을 가동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을 활용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북미관계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을 회심의 카드로 유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북한이 중국 편이 아니고 미국 편에 설 수 있다’고 말이다. 주한미군을 인정한다는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게 아닐까 싶다. (김정은은 대북 특사단에게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연기된 한미연합훈련과 관련해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는 주한미군의 주둔을 사실상 인정한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자신들의 위협이 사라져도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반도에 주한미군을 둘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북한은 이렇게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서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하려고 할 것이다. 북한이 ‘군사적 위협 제거’, ‘체제 안전 보장’을 요구하는 데 대해 우리는 단순히 주한미군 철수만 생각한다. 그런데 조금 비틀어서 보자. 북한은 체제 보장을 위해선 미국과 국교정상화를 해야 한다. 미북 평화협정 체결 등 새로운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면 미국의 급소를 건드려서 되겠나. 북한 입장에서는 주한미군 존재를 인정해주면서 ‘핵 폐기’가 아닌 ‘핵 동결’정도로 때우고, 국제사회로부터는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받고 미국과 국교정상화하는 미끼를 던질 수 있다. 한국으로선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조선일보DB


-북한이 미국에게 ‘대중국 견제에 동참할테니 핵보유국가로 인정해달라’고 하면 미국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나.


“자칫하면 그럴 수 있다. 걷기 위해선 일어서야 하는 것처럼 핵폐기로 가려면 일단 동결을 해야한다. 동결을 거치지 않고 폐기로 가기는 힘들다. 중요한건 동결에서 핵폐기까지 발생하는 시차를 어떻게 좁힐지가 최대 관건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해 8월 월스트리트저널에 쓴 칼럼(https://www.wsj.com/articles/how-to-resolve-the-north-korea-crisis-1502489292)에서 ‘동결과 핵폐기의 간격을 최대한 좁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동결에서 폐기까지 가기 위한 검증 과정이 지연될 수 있다. 북한 전역을 (쌍끌이 어업처럼)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사찰할 수 없지 않나. 검증이 장기화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일단 동결로 마무리 지을 수 있다. 막말로 미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북핵문제를 우리보다 덜 심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또 미국 입장에선 북한의 도발을 누를 수 있는 카드가 많다. 북핵 폐기에 대한 의지는 미국보다 한국이 훨씬 강해야 한다.”


-현 정부의 북핵 폐기 의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많다. 


“현 정부 입장에선 북한이 주한미군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보수의 반발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또 핵 동결과 비핵화를 멀리 있는 사안으로 분리시키지 않으려 할 것이다. 동결은 비핵화 입구, 폐기는 출구. 일단 동결을 시킨 뒤 자연스럽게 북한이 더이상 핵을 가질 필요가 없게끔 만들어나가자고 하지 않을까. 난 이 전략이 틀렸다고 본다. 그렇게 하면 사실상 ‘게임 오버’다.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국교 정상화에 나서면 정상적인 거래관계가 성립될 것이다. 이 상황 속에서 대북제재가 유지되겠나. 진실의 순간까지 가지 않는 한 북핵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제재와 압박을 늦추지 않으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낼 방법을 찾아내는 게 가장 큰 숙제다. 자칫하면 대북제재의 전열이 흐트러질 수 있는데 그 순간 게임은 끝난다.”


-대북제재의 전열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게 무슨 뜻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신호가 행동으로 나타나기 전까지는 대북제재를 완화하지 않겠다고 했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도 안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이 핵 동결 카드를 들고 나왔을 때, 그런 자세가 유지될 수 있을까. 미국은 대북제재를 완화할 수 없다고 할 것이고, 중국도 앞장서서 북한 봐주자고 자처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 정부가 못이기는척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슬쩍 재개하기 시작하면 상당히 어려운 상황으로 갈 수 있다. 북한이 핵 동결에 대한 반대급부를 요구할 때, 대북제재 최전선이면서도 가장 용이한 대상인 우리의 희생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맞춰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열차를 계속 움직이기 위해서 이를 수용한다면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다. 동결에 대한 보상은 제재 완화로 해선 안된다. 경제적 자산보단 정치적 자산(Political Capital)을 써야 한다.” 


-정치적 자산이라면 무엇이 있나.


“경제적 효과는 없지만 정치적 입지를 올려줄 수 있는 카드를 말한다. 북한을 테러지원 국가 목록에서 빼준다든지,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이라든지 이런 정치적인 자산을 사용해야 한다.”


-현재 북한이 받는 경제적 압박이 어느 정도인가. 


“당장 북한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나는 수준은 아니겠지만, 중국의 압박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북한의 6차 핵실험(2017년9월) 이후 유엔 안보리 결의가 12월에 채택됐다. 하지만 중국은 그 이전인 9월부터 대북 압박을 진지하게 시작했다. 중국은 절대로 북한을 소리나게 조이지 않는다. 북한과의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진지하게 나선 대북 압박의 사례로는 ‘북중간 밀거래 단속’ ‘뱅크오브차이나 내 북한 계좌에 대한 압박’ 등을 꼽을 수 있다. 또 중국 동북지역의 기업, 사실상 북한 기업인데 중국 기업으로 꾸민 업체들에 대한 내사 착수 소문이 많이 있었다. 북한으로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큰일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12일 오후 중국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 푸젠팅에서 방북 방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중국이 대북 압박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 효과가 컸다고 생각한다. 지금 북한을 망둥이 뛰듯 놔뒀다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 북한을 때릴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중국은 어떤 형태로든 큰 손실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봤을 것이다. 북한이 대화에 나선 것도 앞으로 자신들이 처한 전략 환경이 상당히 비관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고 본다. 그 위기감 안에 경제적 위기, 정치적 위기, 전략적 위기가 종합적으로 내포돼있기 때문에 타이밍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작년말에 굳힌 것 같다. 그런 흐름 속에서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를 발표했다. 신년사를 통해 우리 정부가 기회의 창을 잘 포착했고 중매 외교에 나선 결과 현 상황까지 오게 됐다.”


-중국이 이 상황을 어떻게 볼 지 궁금하다. 장기 집권 체제를 구축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을 어떻게 대할 거라고 보나.


“당분간은 나사를 조일 것이다. 북한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다. 중국 입장에선 그게 비핵화가 된다면 좋겠지만, 비핵화가 아니더라도 동결 또는 어떤 형태로든 미북관계가 안정적으로 전개되도록 할 것이다. 북한이 쓸데없이 미북간 대화를 깬다면 중국 입장에서는 더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더라도 후속 실무회담에서 파투가 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다시 미북정상회담을 열 수도 없다. 또다시 합의를 파기해 미북 갈등이 고조되면 완전히 위기상황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중국은 어떻게든 미북정상회담이 무사히 개최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앞서 북한은 미국에 중국과의 패권경쟁 미끼를 던질 수 있다고 했는데, 미북이 너무 가까워지면 중국에 부담 아닌가.


“북한의 생각이 그렇다고 해서 미국과 북한이 쉽게 가까워지겠나. 키신저 장관이 김계관에게 ‘공화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과대평가한 것 아니냐’고 했듯이, 북한의 카드가 상대방을 유혹할 수는 있어도 하루아침에 미·북이 동맹국이 될 수는 없다. 북한이 미국의 진정한 우방국이 되려면 핵을 포기해야만 한다. 아마 미국, 중국, 북한이 서로 애매하지만 나쁘지 않은 상황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이 애매한 상황이 우리로서는 최악이다. 북한은 적당히 핵 동결하고, 미북관계는 진전되면, 정부로서는 중매에 나섰다가 되려 뺨 맞는 격이 될 수 있다. 그 뺨은 현재 국민에게 맞을 수도 있고, 후세대가 맞을 수도 있다. 현 상황을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동결’이라는 단어는 금기어다. 비핵화라는 표현은 ‘핵을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로 써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 대신 ‘북핵 폐기’를 써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확실한 용어는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이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가 우리가 이야기하는 핵 폐기다. 그런데 번갈아 가며 쓰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아니라 ‘북한 비핵화’나 ‘북핵 폐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의용 실장이 백악관 브리핑에서 ‘한반도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라는 용어를 쓰더라. 난 이 대신 ‘북한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the North Korea)’라고 해야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 표현을 놓고 미국과 사전 협의를 거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알아서 그렇게 표현을 한 것인지는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엔 북한이 핵을 폐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북핵에 대응하는 핵자산을 도입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담겨 있다고 보인다. 


“주한미군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선 주한미군도 핵을 포기해야 한다고 최근까지 주장해왔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은 북한의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또 북한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도 제거해야 한반도 비핵화가 된다고 주장한다. 북핵에 대응하는 전략 자산을 우리가 먼저 포기하겠다는 발언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해서 용어를 써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로 북한에 이용당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 


-현 정부 내 친북 인사들은 북한의 핵무기가 남쪽을 향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하는 듯 하다. 


“낭만적 민족주의로 북핵문제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만약 북한의 핵무기가 남쪽을 향하지 않을 것이라고 치자. 힘이라는 것은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원에서의 힘(Power in Use)이 있고,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힘(Power in possession)이 있다. 북한의 핵은 소유만으로 체제 경쟁에서 의미가 생기는 힘이다. 우리 국민들과 군인들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만약 북한이 서해 5도 중 한 곳에 특수부대를 보내 졸지에 점령했다고 하자. 북한이 우리측에 여태까지 주장해온 것처럼 ‘이곳은 NLL 안쪽에 들어와 있는 우리 영토이니 남조선은 여기에 대해 다시 영역권을 주장하지 말라’고 한다면 우리가 핵을 가진 국가를 상대로 보복하거나 영토를 재탈환하기 위해 대규모 작전을 전개할 수 있을까. 북한이 한국에 핵을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원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위험한 구도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우리의 전략적 선택에 엄청난 장애 요인이 된다.”


-미북정상회담에 앞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북핵문제를 다루게 될까.


“문 대통령이 핵 문제를 반드시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핵과 관련해 얼마나 깊이 있게 언급할지 자신 없다. 다른 문제를 더 많이 이야기할 것 같다. 신뢰 구축이나 이산가족 상봉 같은 인도적 사안, 비경제 부문 교류 협력과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할 것 같다. 한반도 미래 비전도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을까. 그런데 핵문제를 거론하지 않으면 나중에 핵문제가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로 변환됐을 때 자칫하면 우리가 배제될 수 있다. 핵문제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남북정상회담에서 반드시 이를 거론해야 한다. 북핵이 북미 간 문제인 동시에 남북 간의 문제라는 점을 북한이 느끼게 해야 한다. 북한의 핵문제를 대단히 우려하고 있으며 핵문제는 남북뿐만 아니라 미북, 북중 이런 양자·다자 채널을 통해 깊이 있게 다뤄져야 할 초미의 사안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김정은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김성한 전 외교통상부 제2차관. /윤희훈 기자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미북정상회담까지 여러가지 전략을 준비해서 나올텐데. 


“협상이라는 것은 국력 차와 전혀 관계가 없다. 국력에 의해 결정이 되면 미국과 협상해서 이길 수 있는 나라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파나마도 파나마 운하와 관련해 13년 동안 미국과 협상을 하면서 유리한 결과를 이뤄냈다. 미국 입장에서 이런 것은 수백 개의 협상 중 하나일지 몰라도 약소국 입장에서는 국운을 걸고 모든 인재를 동원해 덤빈다. 이럴 때는 국력 대 국력이 아니라 특정 이슈에 대한 열정과 전략의 게임이 된다. 북한은 25년 동안 제재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핵이라는 열차를 끌고 왔다. 이를 전략적, 기술적으로 뒷받침할 브레인도 많다. 북한은 절대로 정상회담 하나로 핵문제를 담판 짓는 모험을 하지 않을 것이다. 비핵화를 내걸며 군사적 위협 제거와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조건을 걸지 않았나. 이렇게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상태로 두면서 구체적으로 비핵화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거꾸로 할 것이다. 비핵화 조건은 구체화한 뒤 비핵화 자체는 상당히 길게 잡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상당히 복잡한, 또 장기적인 협상이 될 수 밖에 없겠다.


“두뇌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검증 과정이 중요하다. 미국이 북핵 사찰을 얼마나 짧게 이뤄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확신이 없는 상황에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야심 때문에 검증을 6개월 내에 완료하겠다든지 무리하게 하면 지는 협상이 된다. 시나리오를 철저하게 만들어야 한다. 협상에서 보면 미국은 항상 디테일이 약하다. 압도적인 군사력이 있기 때문에 설렁설렁 짚어가다가 안 되면 군사력을 행사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협상 과정에선 미국의 부족한 디테일을 한국과 일본이라는 미국의 동맹국이 메워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 입장에선 한국과 일본이 디테일을 채워줘야 할 나라인데, 한일 갈등으로 이 축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것 같다. 


“미국은 아시아 안보 전략을 한·미·일 3각 체제로 바라본다. 한·미 양국 관계가 빛샐 틈 없이 좋아도 한·일 관계가 좋지 않으면 미국은 한·미 관계를 평가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놓쳐서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위안부 문제도 치밀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현 정부도 미국, 중국만 시야에 들어와 있고 일본은 적당히 관리대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아베 총리를 잘 활용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절대로 한일관계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북핵 해결에 있어서 일본의 역할이 있다면 무엇인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아직 한일 국교정상화와 같은 과정을 북한과 갖지 않았다. 식민지 청산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식민지 배상금으로 일본이 북한에게 제공할 수 있는 돈이 70억~100억달러 정도 된다. 일본을 현 상황에서 가볍게 평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번 특사단의 방북과 방미 일정에 외교부 직원이 따라가지 않았다. 일부에선 이를 두고 외교부 패싱이라는 말도 나온다.

“나에겐 상당히 민감한 질문이다. 핵심전략 결정 과정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해 안타깝다. 외교부가 패싱을 당하더라도 한국이 패싱을 안 당한다면, 실보다 득이 많다면 감수할 수 있는 상황이라 생각한다. 다만 지금부터는 상황이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많은 경험을 가진 외교부의 실무 인력들, 에이스들을 잘 활용하면 좋겠다. 좋은 인재들을 끌어다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성한 전 차관 : 미국 텍사스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외교부 산하 외교안보연구원에서 교수, 미주연구부장 등을 거친 국제정치 전문가다. 한국정치학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외교·안보정책 분야를 자문했다. 2012년 외교통상부 제2차관으로 선임됐다. 현재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장에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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