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스코프] 韓 대통령 첫 참석 NATO 회의, 美·유럽·日 함께 엮는 ‘범동맹외교’ 계기로


NATO 정상회의 참석은 소홀했던 대유럽 외교를 공고히 할 기회
러의 우크라 침공으로 유럽 국가들 집결… 중국과 대립 구도 강화
일본과 관계 개선하고 유럽·호주·뉴질랜드와 파트너십 확대해야

이재승 고려대 국제대학 장 모네 석좌교수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이 마드리드에서 개최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이 된다.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NATO 무대에 서게 된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그리고 회원국을 신청한 스웨덴·핀란드와 더불어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정상이 초청을 받았다. 한국은 2006년 이후 NATO의 글로벌 파트너 국가가 되었고, 최근 NATO 사이버방위센터(CCDCOE) 정회원으로 가입한 바 있다. 이번 NATO 정상회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동맹 차원의 대응과 더불어 신규 회원국 가입, 전략 개념의 재설정, 그리고 대중국 안보 기조와 글로벌 이슈에 이르는 광범위한 주제를 논의하는 주요한 다자 외교의 장이 될 전망이다. 한국에는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에 이어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는 한편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도 된다. 그러나 이번 마드리드 정상회의의 핵심 목표는 무엇보다도 범(汎)동맹 체제에 기반한 대(對)유럽 외교의 기조를 확립하는 데 두어져야 한다.


유럽은 그동안 한반도 평화 정착과 국제 통상에 있어 주요한 파트너가 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 외교에서 유럽은 과소평가되든지,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었다. 여기에는 한국의 대유럽 외교가 빠지기 쉬운 함정들이 있다. 우선 유럽은 급하게 필요하지 않은 외교적 파트너라는 인식이다. “기-승-전-북한”으로 끝나는 단일 목표에 함몰되어 대북 정책에 대한 유용성으로 외교적 상대를 판단했을 때 유럽 국가들은 종종 4강 외교의 뒷전에 놓이곤 했다. 둘째, 유럽은 쉬운 외교적 상대라는 인식이다. 유럽은 큰 기복과 충돌 없이 한국의 이해관계를 수월하게 관철시키고 협조를 도출해 낼 수 있기에 언제든 동원 가능하리라는 예상이다. 셋째, 유럽은 미국과 다르다는 인식이다. 이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특히 북한에 대한 우회로가 존재한다는 선입견은 미국과 유럽이 갈등 양상을 보일 때 더 강하게 나타났다. 미국을 우회해서 대북 정책을 추진하는 수단으로 유럽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2018년 ASEM 정상회의에서 참사에 가까운 시각차를 드러낸 바 있다. 미국과 유럽이 간혹 서로 다투더라도 가장 상위의 동맹 구조로 엮인 노부부와 같은 관계라는 것을 간과한 대가는 한국 외교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졌다.


유럽은 결코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은 상대이다. 30여 국이 훌쩍 넘는 국가들이 가지는 상이성과 유럽연합이라는 통합체를 동시에 다루기 위해서는 세심한 조율이 필요하다. 유럽의 외교는 가치와 원칙, 규범을 중시하고, 글로벌 의제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러한 기조는 당장의 이익보다는 다자적 차원에서 장기적인 투자와 연계를 필요로 한다. 다자 외교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신뢰는 오랜 시간 위에 축적된 행동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가 민감하게 부상하는 상황에서 유럽을 비롯한 글로벌 외교의 우선순위는 종종 뒤로 밀려왔다. 유럽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수사적 언급과 실제 관심도에 있어서는 상당한 온도 차이가 존재했다. 미국과 유럽 간의 대서양 동맹의 근간을 이루는 NATO 역시 한반도의 관심사에서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었다. 여기에 비해 일본은 미·일 동맹과 더불어 NATO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해 왔다.


지정학의 흐름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새로운 냉전의 도래와 더불어 전면전과 핵무기 사용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에 위치한 유럽 국가들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가속화하면서 미국, 유럽,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한국의 주요 동맹국 및 협력국들이 집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 대한 유럽의 입장도 빠르게 바뀌었다. 2021년 NATO 정상회의는 기존의 “기회이자 도전”이었던 중국을 국제 질서와 동맹 안보에서 함께 대응해야 할 “체계적 도전”으로 규정하고, 인권·안보·기술 분야에서 중국과의 대립 구도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쿼드(QUAD)를 넘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가 구체화되고 있으며, 경제와 안보, 공급망과 정치 협력이 재편되는 상황 속에 유럽은 빠르게 동진하고 있다.

여러 유럽 정상들과 조우할 수 있는 이번 마드리드 NATO 회의는 한국이 대유럽 외교의 기조를 명확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여기서의 원칙은 미국과 유럽, 일본, 호주와 뉴질랜드를 아우를 수 있는 ‘범동맹 외교’가 되어야 한다. 미국 따로, 일본 따로, 유럽 따로의 파트너십을 엮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주요 동맹인 이 주체들을 함께 엮어낼 필요가 있다. 범동맹 외교의 틀하에서 한국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인권과 법치라는 가치와 원칙을 공유하는 주체임을 명확히 하고, 그 틀 안에서 유럽과 일본을 외교의 핵심 축으로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북한의 핵 보유 의지는 더 강해졌다. 더욱 난제가 된 비핵화 협상은 기존보다 더 강력해진 국제 공조를 필요로 한다. 기후변화와 팬데믹 같은 글로벌 의제 역시 더 이상 뒷전으로 밀어둘 부차적인 의제가 아니다.


글로벌 중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적인 외교적 시각를 넘어서야 한다. 한반도로 함몰된 외교적 시야를 넓히고, 협상의 레버리지를 강화할 동맹과 파트너십을 확대해야 한다. 이번 NATO 정상회담은 그 과제의 큰 발자국을 내디딜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한류의 확산과 더불어 한국에 대한 유럽의 관심은 안에서부터 조금씩 더 높아지고 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유럽 외교의 기조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서로를 잘 모르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걸 메꾸는 노력들이 한국 외교의 신뢰를 높이고 글로벌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 이번 마드리드 방문 일정은 짧지만 큰 무게를 지닌다.